고사성어

[스크랩] 고사성어

산죽 산바람 2011. 2. 13. 17:27

고사성어

 

■ 마고소양 麻姑搔痒 [삼 마/시어머니 고/긁을 파 / 가려울 양]

☞'마고'라는 손톱 긴 선녀가 가려운 데를 긁어 준다. 일이 뜻대로 됨[동]마고파양(麻姑爬痒)

[출전]『신선전(神仙傳)』 마고(麻姑)

[내용]
: 한(韓)나라 환제(桓帝) 때 마고라는 선녀가 있었는데, 하루는 채경의 집에 머물게 되었다.  마고의 손톱은 사람의 손톱과는 달리 그 모양이 마치 새 발톱처럼 생겼다. 채경은 마고의 손톱을 보는 순간 마음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만일 등이 가려우면 이 손톱으로 긁으면 좋겠다."  또 다른 선녀 방평(方坪)은 채경이 마음속으로 중얼거린 내용을 알고, 사람들을 시켜 그를 끌어다 채찍질을 하도록 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마고는 선녀이다. 너는 어찌하여 마고의 손톱으로 등을 긁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느냐?" 

■ 마부위침 磨斧爲針[갈 마/도끼 부/만들 위/바늘 침]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 작은 노력이라도 끈기 있 게 계속하면 큰 일을 이룰 수 있음의 비유
[유]愚公移山(우공이산)/面壁九年(면벽구년)/水滴穿石(수적천석)-물방울이 돌을 뚫는다/山溜穿石(산류천석)/적토성산(積土成山)/적수성연(積水成淵) **滴/溜--물방울
[동]철저성침[鐵杵成針(鍼)]. 마저작침[磨杵作針(鍼)].
[속]낙숫물이 댓돌 뚫는다

[출전]『唐書』 文藝(苑)傳.『方與勝覽(방여승람)』
[내용]: 당나라의 시인 이백[李白:자는 태백(太白), 701∼762]의 어렸을 때의 이야기이다. 이백은 아버지의 임지인 촉(蜀) 땅의 성도(成都)에서  자랐다. 그때 훌륭한 스승을 찾아 상의산(象宜山)에 들어가 수학(修學)했는데 어느 날 공부에 싫증이 나자 그는 스승에게 말도 없이 산을 내려오고 말았다. 집을 항해 걷고 있던 이백이 계곡을 흐르는 냇가에 이르자 한 노파가 바위에 열심히 도끼(일설에는 쇠공이[鐵杵])를 갈고 있었다.

   "할머니, 지금 뭘 하고 계세요?"
   "바늘을 만들려고 도끼를 갈고 있다[磨斧作針]."
   "그렇게 큰 도끼가 간다고 바늘이 될까요?"
   "그럼, 되고 말고. 중도에 그만두지만 않는다면……."

그 노파의 꾸준한 노력에 크게 감명을 받은 이백이 다시 산 속으로 들어가 학문에 힘쓴 결과 학문을 완성하였다.

■ 마생각 馬生角 [말 마/날 생/뿔 각]

☞말에 뿔이 나다. 곧 세상에 결코 있을 수 없는 것 [동]오두백(烏頭白)
[출전]『史記』 색은(索隱)
[내용]
: 전국 시대 연(燕)나라의 태자로 단자(丹子)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처음 진(秦)나라에 인질로 잡혀 있었다. 그 무례한 대우에 분개하여  "우리 나라로 돌려보내 주십시오"  하고 부탁했다. 그러자 진(秦)시황이 말했다.  "그러지. 까마귀의 대가리가 희어지고(烏頭白), 말에 뿔이 나거든(馬生角) 돌려보내 주지."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으므로 단자는 하늘을 우러러 탄식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냐! 까마귀의 대가리가 금세 하얘지고, 말에도 뿔이 돋아 나오는 것이 아닌가.  진시황은 어쩔 수 없이 그를 연나라로 돌려보내 주었다. 


■ 마이동풍 馬耳東風[말 마/귀 이/동녘 동/바람 풍]

☞말 귀에 봄바람이다. 남의 말에 잘 귀를 기울이지 않고 그냥 흘려버리거나 알아 듣지 못하는 것. 또는 어리석고 둔하여 남의 말을 알아 듣지도 못하고 사리를 깨쳐 알지도 못한다.

[동]牛耳讀經(우이독경). 牛耳誦經(우이송경):쇠 귀에 경 읽기/對牛彈琴(대우탄금):소를 마주하고 거문고를 탄다.
[속담] 쇠 귀에 경 읽기/말의 귀에 봄바람 부나마나 /너하고 말하느니 개하고 말하는 것이 낫겠다./담벼락하고 말하는 셈이다.

[출전]『李太白集』〈券十八〉답왕십이한야독작유회(答王十二寒夜獨酌有懷)
[내용] : 왕거일(王去一)이 ‘쓸쓸한 밤 홀로 술을 마시며 회포에 잠긴다.〈寒夜獨酌有懷(한야독작유회)〉’라는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읊은 시를, 이백이‘왕거일의 한야독작유회에 답한다.〈答王去一寒夜獨酌有懷(답왕십이한독작유회)〉’에“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들으면 모두 머리를 흔들 것이네. 마치 동풍이 말의 귀를 스치는 것 같이.(世人聞此皆掉頭. 有如東風射馬耳)”라는 싯구로 답했다.

왕거일은 詩로 자기의 불우(不遇)를 이백에게 호소한 듯하다. 이백은 거기에 대해 달이 휘영청 밝고 추운 밤에 독작을 하고 있는 왕거일의 쓸쓸함을 생각하면서 이 시를 지은 것이다. 내용을 보면, 술을 마셔 만고의 쓸쓸함을 씻어버릴  것을 권하고 또 그대처럼 고결하고 뛰어난 인물은 지금 세상에서는 쓰이지 못함이 당연하다고 위로하며 다시 강개하는 말투로 자기의 당세 관(當世觀)을 엮어 간다.

지금 세상은 투계(鬪鷄)-당시 왕후 귀족 사이에서 즐겨 유행되었다.- 의 기술에 뛰어난 인간이 천자의 사랑을 얻을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만적(蠻賊)의 침입을 막아 공을 세운 인간이 권력을 잡고 거드름을 피우는 세상이다. 물론 자네나 나는 그런 인간들의 흉내는낼 수 없다. 우리는 북쪽 창에 기대어 시를 읊거나 부(賦)를 짓는다. 그러나 그것이 만방에 미치는 걸작이라도 지금 세상에서는 한 잔의 물만한 가치도 없다. 아니 그뿐 아니라 세인들은 그것을 듣고 고개를 흔들며 동풍이 말의 귀를 스치는 정도로밖에 생각지 않는다.

이백은 비분하며 원래 중국은 무(武)보다 문(文)을 중시하는 나라로 文의 힘이 한 나라를 기울게도 하고, 반대로 흥하게도 한다고 읊었다. 더구나 이백처럼 스스로를 자부하는 바가 컸었던 시인에게는 그것이 강했다.생선 눈깔과도 같은 어리석은 자들이 명월이나 주옥과 같은 우리들을 비웃고 귀한 지위를 대신 차지하려고 한다. 옥석혼효(玉石混淆)하고 현우전도(賢愚轉倒)되어 있는 것이 지금의 세상이다. 그리고, 물론 우리들 시인에게는 경상(卿相)의 자리는 없다. 청년 시절부터 우리는 산야에 고답하는 것이 원이 아니었던가, 하고 격려하며 힘을 북돋고 시를 끝맺는다. 이백은 세인들이 시인의 말이나 걸작에 기울이는 관심도가 그 정도로 낮고 무관심하다고 비분(悲憤)하고 있는 것임.

[원문]昨夜吳中雪 子猷佳興發 萬里浮云卷碧山 靑天中道流孤月 孤月滄浪河漢淸 北斗錯落長庚明 懷余對酒夜霜白 玉床金井 嶸人生飄忽百年內 且須 暢萬古情 君不能狸膏金距學斗坐令鼻息吹虹霓 君不能學哥舒橫行靑海夜帶刀 西屠石堡取紫袍 吟詩作賦北里 萬言不直一杯水 世人聞此皆掉頭 有如東風射馬耳 魚目亦笑我 請與明月同

[예문]
마이동풍으로 흘려듣다
▷ 그에게는 나의 충고가 마이동풍이었다.
▷ 아닌 게 아니라 수차 그런 권고를 했는데 마이동풍이니 딱하지요.≪박경리, 토지≫
▷ 정규 노동시장의 경직성과 정부 규제가 대폭 완화돼야 한다고 주문할 뿐이다. 학계도 국가경쟁력 강화와 성장잠재력 확충을 위해 경제계와 같은 의견이다. 이에 대해 참여정부는 마이동풍이었다.<2006 중앙일보>
▷ 당 지도부는 “당 소속 의원들이 대선주자에게 기웃거리거나 눈치보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줄서기를 공개경고하고 나섰으나 의원들에게는 마이동풍(馬耳東風)이다.<2006 국민일보>  


■ 마중지봉 麻中之蓬[삼 마/가운데 중/어조사 지/쑥 봉]

☞구부러진 쑥도 삼밭에 나면 자연히 꼿꼿하게 자란다. 사람도 주위환경에 따라 선악이 다르게 될 수 있음.

[유]근주자적(近朱者赤)·근묵자흑(近墨者黑), 귤화위지(橘化爲枳)·남귤북지(南橘北枳),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출전]《순자()》〈권학()〉편

[내용]
"서쪽 지방에 나무가 있으니, 이름은 사간(射干)이다. 줄기 길이는 네 치밖에 되지 않으나 높은 산 꼭대기에서 자라 백 길의 깊은 연못을 내려다 본다. 이는 나무줄기가 길어서가 아니라 서 있는 자리가 높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쑥이 삼 밭에서 자라면 붙들어 주지 않아도 곧게 자라고, 흰 모래가 진흙 속에 있으면 함께 검어진다-(中略)- 이런 까닭에 군자는 거처를 정할 때 반드시 마을을 가리고(擇), 교유할 때는 반드시 곧은 선비와 어울린다. 이는 사악함과 치우침을 막아서 중정(中正)에 가까이 가기 위함이다."

마중지봉은 윗글의 "봉생마중 불부이직(蓬生麻中 不扶而直)"에서 취한 것이다. 앞의 "봉생마중"을 그대로 쓰기도 한다. 쑥은 보통 곧게 자라지 않지만, 똑바로 자라는 삼과 함께 있으면 붙잡아 주지 않더라도 스스로 삼을 닮아 가면서 곧게 자란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하찮은 쑥도 삼과 함께 있으면 삼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니, 사람도 어진 이와 함께 있으면 어질게 되고 악한 사람과 있으면 악하게 된다는 것을 비유한 것으로 사람이 생활하는 데 환경이 중요함을 함축한 말이다.
[원문]蓬生麻中 不扶而直 白沙在涅 與之俱黑

[참고]삼은 또한 밀식해서 심으면 곧장 하늘로 뻗으면서 자란다. 이런 사실은 옛날 유학자들의 많은 교훈거리로 되어 왔다. 친구, 환경이 중요하다는 뜻의 '마중지봉(麻中之蓬)' 이란 말이 있다. 삼밭에 난 쑥이란 뜻이니까, 삼밭이 쑥대밭이 된 것이 아니냐고 농담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은 우리가 잘 음미해야 할 말이다. 쑥은 무릎 정도로 자라는 것이 보통이지만 쑥이 삼밭에 났을 때에는 삼과 똑같이 자란다. 삼이 한자 자라면 쑥도 한자 자라고, 삼이 여섯자 자라면 쑥도 여섯자 자라난다. 가까이서 보지 않으면 쑥대와 삼대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똑같다. 즉, 마중지봉이란 말은 좋은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주위의 감화를 받아 선량해 진다는 말이며, 여기에서 삼은 좋은 친구, 좋은 환경을 말하고 있다.


■ 마혁과시 馬革寡尸 [말 마/가죽 혁 / 쌀 과 / 주검 시] 

☞말가죽으로 시체를 싼다. 전쟁터에 나가는 용장(勇將)의 각오

[출전]『후한서(後漢書)』 마원전(馬援傳)
[내용]후한(後漢) 광무제 때의 명장 마원이 교지(交趾)와 남부지방 일대를 평정하고 수도로 귀환하자 많은 사람들이 그를 맞이했다.  그 중 지모가 뛰어나기로 유명한 맹익이 판에 박은 듯한 인사말을 하자 마원은 맹익에게 이렇게 말했다.  "옛날 노박덕(路搏德) 장군이 남월(南越)을 평정하여 큰공을 세우고도 작은 영토를 받는 데 불과 했는데 나는 큰공을 세우지도 못했는데도 공에 비해 상이 너무 커 이 영광이 오래 지속될 수 있을지 두렵다.  지금 흉노와 오환(烏桓)이 북방을 위협하고 있으니 이들을 정벌해야 한다. 사나이는 마땅히 전장에서 죽어야 하고 말가죽으로 시체를 싸서 장사지낼 뿐이다


■ 막고야산 莫姑野山 [말 막/잠시 고/들 야/뫼 산] 

☞ 늙지도 죽지도 않는 신선들이 사는 선경. 북해 속의 신선이 사는 산, 무위의 도를 갖춘 자유인이 사는 곳

[주]莫=邈 (멀 막/ 아득할 막)
[출전]『장자』 추수 편
[내용]도를 터득한 현인 견오가 연숙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접여에게서 이야기를 들었네만, 글쎄 그게 너무 터무니없고 앞으로 나아갈 줄만 알았지 돌아올 줄을 모르더군.  나는 그 이야기가 은하수처럼 한없이 계속되는 것 같아 그만 오싹해졌네. 너무도 차이가 있어 상식에 어긋나네."  연숙이 물었다.  "그 이야기란 어떤 건가?"  견오가 대답했다. 

"막고야산에 신인이 살고 있지. 그 피부는 얼음이나 눈처럼 희고, 몸매는 처녀같이 부드러우며 곡식은 먹지 않고 바람과 이슬을 마시며 구름을 타고 용을 몰아 천지 밖에서 노닌다네.  그가 정신을 한데로 집중하면 그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병들지 않고 곡식도 잘 익는다는 거야. 이야기가 하도 허황되서 믿어지지가 않네." 

연숙이 말했다.  "그렇군. 장님에게는 색깔의 아름다움이 안 보이고 귀머거리에겐 음악의 황홀한 가락이 안 들리지만, 장님이나 귀머거리는 육체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닐세. 지식에도 장님과 귀머거리가 있네. 그게 바로 지금의 자네를 말하네.  신인의 덕은 만물을 섞어 하나로 만들려는 거지. 세상 사람들은 그가 천하를 다스릴 것을 바라고 있으나, 그가 무엇때문에 애써 수고하려 하겠나?.  이러한 신인은 외계의 사물에 의해 피해를 입는 일이 없고 홍수가 나서 하늘에 닿을 지경이 돼도 빠지는 일이 없으며, 큰 가뭄으로 금속과 암석이 녹아 흘러 대지나 산자락이 타도 뜨거운 줄 모르네.  신인은 그 몸의 먼지나 때, 쭉정이와 겨로도 세상 사람들이 성인이라는 요나 순을 만들 수가 없는데 무엇 때문에 천하 따위를 위해 수고하려 하겠는가." 장자가 말하고 있는 막고야산은 바로 무위의 도를 갖춘 자유인이 사는 곳을 가리키는 것이다


■ 막역지우 莫逆之友 [말 막/거스를 역/어조사 지/벗 우]

☞마음이 맞아 서로 거스리는 일이 없는, 死生을 같이할 수 있는 친밀한 벗.
[유]
竹馬故友(죽마고우)/,斷金之交(단금지교) /.金蘭之交(금란지교)./芝蘭之交(지란지교)/.知己之友(지기지우)./知音(지음)./刎頸之交(문경지교)./水魚之交(수어지교)./膠漆之交(교칠지교)-아교와 옻처럼 떨어질 수 없는 가까운 사이/관포지교(管飽之交)-관중과 포숙아의 고사

[출전]莊子
[내용1]자사(子祀)와 자여(子輿)와 자리(子犁)와 자래(子來) 이렇게 네 사람은 서로 함께 말하기를, "누가 능히 無로써 머리를 삼으며, 삶으로써 등을 삼고, 죽음으로써 엉덩이를 삼을까? 누가 사생존망(死生存亡)이 한 몸인 것을 알랴! 우리는 더불어 벗이 되자." 네 사람은 서로 보고 웃었다. 마음에 거슬림이 없고, 드디어 서로 벗이 되었다.

子祀 子輿 子犁 子來 四人相與語曰 孰能以無爲者 以生爲背 以死爲尻 孰知死生存亡之一體者 吾與之友矣 四人相視而笑 莫逆於心 遂相與爲友.

[내용2]자상호(子桑戶)와 맹자반(孟子反)과 자금장(子琴張) 이렇게 세 사람은 서로 더불어 말하 기를, "누가 능히 서로 더불어 함이 없는데 서로 더불어 하며, 서로 도움이 없는데 서로 도우랴. 능히 하늘에 올라가 안개와 놀며, 끝이 없음에 날아 올라가며, 서로 잊음을 삶으 로써 하고, 마침내 다하는 바가 없으랴"하고 말했다. 세 사람은 서로 보고 웃으며, 서로 마음에 거슬림이 없고, 드디어 서로 더불어 벗이 되었다.

[원문]子桑戶 孟子反 子琴張 三人相與語曰 孰能相與於無相與 相爲於無相爲. 孰能登天遊霧 撓撓 無極 相忘以生 無所終窮 三人相視而笑 莫逆於心 遂相與友.

[예문]
▷ 그와는 어려서는 싸움도 많이 하였지만 뜻이 맞는 유일한 막역지우였다.
▷ 일 년에 한두 번 방학 대만 오래간만에 만나는 터이나, 이 두 청년은 입심 자랑이나 하듯이 주고받는 말끝마다 서 로 비꼬는 수작밖에 없건마는, 그래도 한 번도 정말 노해 본일은 없는 사이이다. 중학에서 졸업할 때까지 첫째, 둘째 를 겯고 틀던 수재이고, 비슷비슷한 가정사정에서 자라났 기 때문에 어린 우정일망정 어느덧 깊은 이해와 동정은 버 리려야 버릴 수 가 없는 것이었다.≪삼대≫

*2003 수능출제

나는 북관(北關)에 혼자 앓어 누어서
어느 아츰 의원(醫員)을 뵈이었다
의원은 여래(如來)같은 상을 하고 관공(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느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집드니
문득 고향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 정주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씨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씨를 아느냐 한즉
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띄고
막역지간(莫逆之間)이라며 수염을 쓴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의원은 또다시 넌즈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어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고향--백석>


■ 만가 輓歌[수레 끌 만/노래 가]

☞상여를 메고 갈 때 부르는 노래. 혹은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노래
상여[내용] 한(漢)나라 고조 유방(劉邦)이 즉위하기 직전의 일이다. 한나라 창업 삼걸(三傑) 중 한 사람인 한신(韓信)에게 급습 당한 제왕(齊王) 전횡(田橫)은 그 분풀이로 유방이 보낸 세객(說客) 역이기(역食其)를 삶아 죽여 버렸다.

 이윽고 고조가 즉위하자 보복을 두려워한 전횡은 500여 명의 부하와 함께 발해만(渤海灣)에 있는 지금의 전횡도(田橫島)로 도망갔다. 그 후 고조는 전횡이 반란을 일으킬까 우려하여 그를 용서하고 불렀다.

전횡은 일단 부름에 응했으나 낙양을 30여리 앞두고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하고 말았다. 포로가 되어 고조를 섬기는 것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전횡의 목을 고조에게 전한 두 부하를 비롯해서 섬에 남아있던 500여 명도 전횡의 절개를 경모하여 모두 순사(殉死)했다.

그 무렵, 전횡의 문인(門人)이 해로가(해露歌) 호리곡(蒿里曲)이라는 두 장(章)의 상가(喪歌)를 지었는데 전횡이 자결하자 그 죽음을 애도하여 노래했다.

해上朝露何易晞 부추 위의 이슬은 쉬이 마르도다.
露晞明朝更復落 이슬은 말라도 내일 아침 다시 내리지만,
人死一去何時歸 사람은 죽어 한번 가면 언제 다시 돌아오나.[해로가]

蒿里誰家地 聚斂魂魄無賢愚 호리는 뉘집 터인고, 혼백 거둘 땐 현우가 없네.
鬼伯一何相催促 人命不得少王? 귀백은 어찌 그리 재촉하는고, 인명은 잠시도 머뭇거리지 못하네.[호리가]

이 두 상가는 그 후 7대 황제인 무제(武帝:B.C.141∼87) 때에 악부(樂府) 총재인  이연년(李延年)에 의해 작곡되어 해로가는 공경귀인(公卿貴人), 호리곡은 사부서인(士夫庶人)의 장례 시에 상여꾼이 부르는 '만가'로 정해졌다고 한다  .

[참고]만가는 우리나라 구전 민요의 하나로서 상여를 메고 갈 때 부르는 노래이다. 따라서 구비 전승으로서의 민중 문학인 동시에 민속인 것이다. 그러므로 만가는 전통 문화의 중요한 유산이며 어느 면에서는 기록문학에 비할 수 없는 절실한 생활 그 자체이기도 하다. 만가는 쉽게 '상여소리', '상부소리', '영결 소리'라고 하며 또 향도가, 향두가, 상두가(喪土歌), 상두가(常頭歌), 해로가라고도 한다. 향도가란 신라와 고려 시대의 향도라는 일종의 신앙 단체에서 연유된 것으로, 불교와 무속의 두 요소가 내포된 단체가 부르는 노래였다.

 김유신 장군의 화랑도를 일명 용화향도라고 한 것을 보면 신라의 화랑이 불교와 고유 신앙의 요소를 내포한 단체였음을 알 수 있다. 또 고려 숫종 때는 승려와 일반인으로 구성된 만불회라는 신앙 단체가 있어서 그 모임에 든 사람을 만불향도라 했다. 그래서 향도란 요즘 단원이나 회원과 같은 말로, 죽은 사람들이 합창하는 상여노래를 향도가라 했다. 향도들이 상여를 운상하게 된 것은 맹인을 영천 영지에 극락시킨다는 신앙적 요소가 내포돼 있었다. 향도가 향두로 변음되어 향두가가 된 것이다.
 
 상여의 낮은말로 상두(喪土)란 말이 있다. 여기서 '土'는 뿌리를 의미하는 뜻에서 '두'로 발음한다. 남의 것을 가지고 제 낯을 내는 사람을 비꼬는 속담으로 "상두술 낯내기"라는 말이 널리 쓰이고 있는 것처럼, 상여 소리를 '상두가'라고도 했는데 여기서 상두가란 어휘가 생겼을 것이다.
 
 해로가란 솔잎에 묻은 이슬에서 나온 말로 인생 무상을 의미하는 낱말이다. 여기서 '솔'은 소나무의 솔이 아니라 달래과에 속하는 다년초 식용 식물부추를 의미하는 호남 지방의 방언이다. 간밤에 내린 이슬이 부춧잎에 방울방울 맺혀 있다가 아침에 해가 뜨면 가장 먼저 떨어진다는 데서 허무한 인생을 비유한 것이다. 한나라 때 생긴 말로 주로 귀족 사회에서 쓰였다. 그리고 만가를 호남 지방에서는 상부가, 제주도에서는 답산가라 일컫는다. 상부가란 옛날 향약의 상부 상조에서 나온 말이요, 갑산가란 상여를 메고 산으로 올라간다는 데서 그렇게 쓰인 것이다.
 
 영어로 엘레지다. 즉 죽은 이를 위해서 애도와 비탄을 나타내는 노래나 시다. 이 'Elegy'는 그리스의 'elegos' 즉 갈대피리란 뜻으로서 당초에는 피리를 반주하는 만가의 일종을 지칭했으나 후에 심사나 명상 등을 싣는 데 적합한 시 형식을 지칭하게 되었고, 근세에 이르러서는 고인에 대한 애도와 비탄의 감정을 나타내는 서정시를 지칭하게 되었다. 우리가 만가라 하면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가사를 노래화한 것을 이른다. 만가에는 상여를 메고 묘지를 향하면서 부르는 노래와 매장한 뒤에 흙을 다질 때 부르는 노래가 있다. 특히 후자는 '달구지'라고 따로 말하기도 한다. 지금은 거의 소멸되었지만 봉분까지 환전히 다 끝마치고 돌아오면서 부르는 '산하지'라는 허전한 노래가 있다. 다른 지방에서는 볼 수 없고 오직 해남군과 고흥군 일부지역에서만 간긴히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는데 돌아오면서 부르는 노래까지를 총칭하여 만가라 한다. < 한국만가집>


■ 만경창파 萬頃蒼波 [일만 만/이랑 경/푸르를 창/물결 파]

☞만 이랑의 푸른 물결. 한없이 넓고 푸른 바다.
[예문]    
▷ 어기야 디여차 어야디야 어기여차 뱃놀이 가잔다.
1. 부딪치는 파도소리 단잠을 깨우니 들려오는 노(櫓)소리 처량도 하구나
2. 만경창파에 몸을 실리어 갈매기도 벗을 삼고 싸워만 가누나
3. 낙조청강(落照淸江)에 비츨 띄우고 술렁술렁 노저어라 달맞이 가잔다.≪뱃노래≫

▷ 위에 떠오르더니 북두와 견우성 중간으로 흘러가더라. 희뿌연 물안개 강을 넘고, 물에 비친 달빛은 하늘과 닿았네. 일엽편주 몸을 맡기고 만경창파를 건너네. 시야는 탁트여 호탕하기 그지없다, 마치 바람을 타고 허공을 가르는듯, 멈출 곳이 그 어드메뇨; 몸은 가볍게 한들한들-『적벽부,』

▷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 아리랑 응응으응 아라리가 났네 (1) 문경 새재는 웬 고갠가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 난다 (2) 만경창파에 두둥둥 뜬 배 어기여차 어야디여라 노를 저어라 (3) 만나니 반가우나 이별을 어이해 이별이 되랴거든 왜 만났던고 (4) 노다 가세 놀다나 가세 저 달이 떴다 지도록 놀다 가세 (5) 치어다 보니 만학은 천봉 내려 굽어보니 백사지로구나 (6) 님이 죽어서 극락을 가면 이내 몸도 따라가지 지장보살 (7) 왜 왔던고 왜 왔던고 울고 갈 길을 내가 왜 왔던고 (8) 다려가오 날 다려가오 우리 님 뒤 따라서 나는 가네 ≪진도아리랑≫

▷ 요내 춘색(春色)은 다 지나가고 황국 단풍이 돌와왔구나. 천생만인은 필수기직이라. 각각 벌어 먹는 골시 달라. 우리는 구태여 선인이 되어 타고 다니는 것은 칠성판이오. 먹고 다니는 것은 사자밥이라. 입고 다니는 것은 매장포로다. 요내일신(一身)을 생각하면 불쌍하고 가련하지 않단 말이냐.

. 배를 타고 선창을 떠나 만경창파(萬頃蒼波)로 떠나려 갈 제 금년 신수 불행(不幸)하여 몹쓸 액풍 광풍 폭풍 만나 수로창파 대해중에 천리(千里) 만리(萬里)로 불려갈새 양쪽 돛대는 직근 부러져 세 동강에 나고 뱃머리는 빙빙 정신(精神)은 아득하여 삼혼(三魂)칠 백(七魄)이 흐터질 제 사십 명 동모를 수중에 넣고 명천(明天) 하느님 굽어 살피사 요내 여러 동모를 살려내소서.<배따라기>

▷ 이때의 심청이는, 세상사(世上事)를 하직(下直)하고, 공선(供船)에 몸을 싣고, 동서남북(東西南北) 지향(指向)없이, 만경창파(萬頃蒼波) 높이 떠서, 영원(永遠)히 돌아가는구나, 도판(渡板) 떼고 행선(行船)을 하는데..≪심청가≫ 中

▷ 참으로 내 재주를 들어보아라. 만경창파(萬頃蒼波) 깊은 물에 기엄둥실 사족을 바투 끼고 긴 목을 움치며 넓적이 엎드리면 둥글둥글 수박이오 편편납작 솥뚜껑이라. 나무 베는 목동이며 고기 잡는 어부들이 무엇인지 모를 터이니 장구하기는 태산이오 평안하기는 반석이라.≪별주부전≫ 中


■ 만고풍상 萬古風霜[일만 만/옛 고/바람 풍/서리 상]

☞갖은 고생.
[유]
간난신고[艱難辛苦]/팔년풍진[八年風塵]
[예문]
▷ <풍어가>

넝상 가래야  이 가래가 뉘가랜고 천생원댁 가래로세
금년부터는 만고풍상 일년 열두달 삼백육십날
가내모두 무고하고 소원성취 이룩된다
어 넝상 가래야 내고장 내마을에 대풍으로 이룩되어
잘사는 고장 세어보세

▷ <노들강변>

노들강변 봄버들 휘휘 늘어진 가지에다 무정세월 한 허리를 칭칭 동여 매여 볼까
* 에헤요 봄버들도 못 믿으리로다 푸르른 저기 저 물만 흘러 흘러 가노라
노들강변 백사장 모래마다 밟은 자죽 만고풍상 비바람에 몇번이나 지어 갔나
* 에헤요 백사장도 못 믿으리로다 푸르른 저기 저 물만 흘러 흘러 가노라
노들강변 푸른물 네가 무심 망녕으로 재자가인 아까운 몸 몇몇이나 데려갔나
* 에헤요 네가 진정 마음을 돌려서 이 세상 쌓인 한이나 두둥 싣고서 가거라

▷ 헌재 뒤뜰 한켠에는 600여년 동안 만고풍상을 겪은 소나무 한 그루가 서있다. 기념물 8호 백송(白松)이다. 중국 북부가 원산지인 백송은 베이징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개체수가 많지 않은 희귀수종이라고 한다.<2006 세계일보>


■ 만구성비 萬口成碑[일만 만/입 구/이룰 성/비석 비]

☞많은 사람의 입이 비석을 만든다.
여러사람이 칭찬하는 것은 송덕비를 세우는 것과 같다. 많은 사람이 칭찬하게 되면 결국 송덕비를 세움과 같이 명성이 알려진다. 

▷ 주꾸미에게 공덕비를 세우는 일에 반대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공덕비를 많은 사람의 말이 이루는 ‘만구성비(萬口成碑)’라고도 하지 않았는가.<2007.10 서울신문>


■ 만사휴의 萬事休矣[일만 만/일 사/그칠 휴/어조사 의]

☞모든 일이 끝났다, 어떻게 달리 해볼 도리가 없다
[유]능사필의(能事畢矣), 도로무공(徒勞無功)

[출전]송사(宋史) 형남고씨세가(荊南高氏世家)
[내용]당나라가 망하고 송(宋:北宋, 960∼1127) 나라가 일어날 때까지 53년 동안에 중원에는 후량(後梁) 후당(後唐) 후진(後晉) 후한(後漢) 후주(後周)의 다섯 왕조가 일어났다가 쓰러지곤 했는데 이 시대를 오대[五代:후오대(後五代)의 준말]라 일컫는다.

 또 다시 중원을 벗어난 각 지방에는 전촉(前蜀) 오(吳) 남한(南漢) 형남(荊南) 오월(吳越) 초(楚) 민( ) 남당(南唐) 후촉(後蜀) 북한(北漢)등 열 나라가 있었는데 역사가는 이를 오대 십국(五代十國)이라 일컫고 있다. 이들 열 나라 중에는 형남과 같은 보잘것없는 작은 나라도 있었는데 이 나라의 왕인 고종회(高從誨)는 아들 고보욱(高保勖)을 분별없이 귀여워했다.

 그래서 고보욱은 남이 아무리 노한 눈으로 쏘아보아도 싱글벙글 웃어 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이 사실을 안 백성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모든 일이 끝장났다[萬事休矣].'과연 고보욱은 왕위에 오르자 나라 일은 나 몰라라 하고 사치와 방탕에 빠져 지냈고 오래지 않아 형남은 멸망하고 말았다.

[예문]
▷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건만 시험에 떨어져 만사휴의로 끝났다.
▷ 그들이 세워 두었던 계획은 만사휴의로 변해 버리고 두 사람은 차량 절도죄로 구속될 것이다.≪최인호, 지구인≫  


■ 만수무강 萬壽無彊[일만 만/목숨 수/없을 무/굳셀 강]

만년동안 목숨을 유지하여 끝이 없음,수명이 끝이 없기를 바라는 말임

[출전]『시경(詩經)』
[내용1]남산에는 뽕나무가 있고 북산에는 버드나무가 있다네 즐거운 군자여 국가의 영광이로다 즐거운 군자여  만수무강하리라(北山有楊 樂只君子 邦家之光, 樂只君子 萬壽無疆)《시경(詩經)》소아(小雅) 남산유대(南山有臺)

[내용2]"2월에는 얼음을 쪼개고, 3월에는 얼음창고에 넣고, 4월에는 이른 아침에 염소를 바치고, 부추로 제사를 지낸다. 9월에는 서리가 내리고, 10월에는 마당을 깨끗하게 하며, 두 단지의 술로 잔치를 베풀어 염소와 양을 잡아 대접하고 공회당에 올라가 쇠뿔잔의 술을 서로 권하며 만수무강(萬壽無疆)하십시오."

중국 농민들의 세시풍속과 농촌의 정경을 읊은 서사시이다. 주(周)나라를 세운 문왕(文王)의 아들인 주공(周公)은 성왕(成王)의 섭정(攝政)이 되었는데, 주왕조(周王朝)의 전설적 시조인 후직(后稷)과 공유(公劉)가 농업진흥정책을 펴온 내력을 시로 엮어 노래하게 하였다. 백성들의 안락한 생활과 부강한 나라를 건설하려는 주공의 뜻이 담겨 있는 시이다. 《시경(詩經)》 〈빈풍〉의 '칠월' 

■ 만시지탄 晩時之歎 [늦을 만/때 시/어조사 지/탄식할 탄]

☞때가 늦었음을 한탄한다. 기회를 잃고 지났음을 한탄함.
[유]사후약방문, 망양보뢰 , 후시지탄後時之嘆

[예문]
▷ 오래 길들인 생활의 터전을 내준 걸 후회했다. 후회해 봤자 만시지탄이었다.≪박완서, 오만과 몽상≫

▷ 그러나 얼마 안 되어서 나는 넋이 풀리어 기둥같이 묵묵히 서 있게 되었다. 왜냐면 큰 닭이 한 번 쪼인 앙갚음으로 허들갑스리 연겊어 쪼는 서슬에 우리 수탉은 찔금 못 하고 막 곯는다. 이걸 보고서 이번에는 점순이가 깔깔거리고 되도록 이쪽에서 많이 들으라고 웃는 것이다. 나는 보다 못하여 덤벼들어서 우리 수탉을 붙들어 가지고 도로 집으로 들어왔다. 꼬추장을 좀더 먹였드라면 좋았을 걸 너무 급하게 쌈을 붙인 것이 퍽 후회가 난다. - 김유정(金裕貞), 《동백꽃》 中에서

▷ 고령화의 중대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한 갖가지 대응책도 마련 중이다. 만시지탄이지만 기초적인 노후 안전망인 국민연금의 재정 구조 개혁도 추진하고 있다..<LG경제연구원-성공을 꿈꾸는 한국인이 사는 법>

▷ 작고 침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중에서 또 한 사람이 혐의를 벗었군. 만시지탄의 감이 있지만!」 암스트롱이 죽은 여인에게로 몸을 기울였다. <김남주-애거서크리스티전집>

장끼 거동 볼작시면 차위 밑에 엎디어서, “에라 이년 요란하다, 후환을 미리 알면 산에 갈 이 뉘 있으랴. 선미련 후실기라, 죽는 놈이 탈없이 죽으랴. 사람도 죽기를 맥으로 안다 하니 나도 죽지 않겠나 맥이나 짚어 보소.”  <장끼전>


■ 만신창이 滿身瘡痍[찰 만/몸 신/상처 창/상처 이]

☞온몸이 상처투성이. 성한데가 없을 만큼 상처투성이가 됨. 또는 사물이 쓸 만한 데가 없을 정도로 결함이 많음.일이 아주 엉망이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예문]
▷ 10월 말에 기상관측 사상 최고의 강풍이 몰아치고 네 시간 만에 2백mm라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강원 영동지역 다시 피해가 속출했고 또다시 만신창이가 됐습니다.<2006 뉴스보도>

▷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수해로 만신창이가 된 채 겨울을 맞아야 할 북녘 동포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망설여선 안 된다는 원칙도 분명히 밝혀둔다. <2006 한겨레21>

▷ 번역을 저술로 치지 않는 학문 구조, 쥐꼬리만한 번역료, 짧은 번역 일정, 나누어 번역하기 등 번역을 위한 출발선 자체가 이미 졸속이고 문제투성이다보니 결승점은 만신창이가 된다. 번역을 번역답지 못하게 하는 번역구조는 번역자들을 반역자로 내몬다<2006 조선일보>

▷ 그런 나무가 되고 싶다 --조명선

기슭에서 산을 품는
흔들림 없는 나무가 되어
한적한 물가 가만가만
그늘 깊은 나무가 되어
천 년을 딱 한 사람만
기다리는 나무가 되어
아무것도 묻지 않고
비바람에 엉키다가
처음처럼 기다리다
그 아픔에 혼절하고픈
꼭 한번 그러고 싶은
욕심 많은 나무가 되어
길가에서 만신창이로
온몸을 내 주어도

한 가지씩 썩어가도
따뜻한 눈물 되어
한 사람 가슴 적시는
그런 나무가 되고 싶다.


■ 만전지책 萬全之策[일만 만/온전할 전/몸 신/꾀 책]

☞만가지가 다 온전한 계책, 아주 안전하거나 완전한 계책.조금의 허술함도 없는 완전한 대책

[출전]『후한서(後漢書)』 유표전(劉表傳)
[내용]후한 말기 魏(위)나라 曹操(조조)의 군대와 북방 최대의 軍閥(군벌)袁紹(원소)의 군대가 官渡(관도)라는 곳에서 대치하고 있었다. 이 때 원소의 군대는 10여만명이나 되는 데 반해 조조의 군대는 3만여명밖에 되지 않았다. 이렇게 수적으로는 조조의 군대가 열세에 있었지만 白馬(백마)의 싸움에서 원소의 명장 顔良(안량)과 文丑(문추)를 격파하여 죽게 하는 등 원소에게 상당한 타격을 주고 있었다. 그렇지만 병력의 수적인 면에서 워낙 뒤떨어졌기 때문에 조조는 한 때 도읍인 許昌(허창)으로 후퇴하려는 계획도 세워 보았다.
 
 원소는 원소대로 병력 수에 있어서는 절대 우위에 있었지만 형세가 불리하다고 판단,荊州(형주) 목사 劉表(유표)에게 도움을 청했다. 유표는 말로는 도와주겠다고 하고는 팔짱을 끼고 관망만 하고 있었다. 이를 보다 못해 유표의 측근인 하숭과 유선이 진언했다."우리가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관만 하고 있으면 결국 양쪽 모두의 원한을 사게 됩니다. 지금 형세로 보아 조조는 원소의 군대를 격파할 것입니다. 그러고는 곧바로 우리를 공격해 올 것입니다. 그러니 원소보다 조조편을 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이것이
가장 안전하고 완전한 대책(萬全之策)입니다." 그러나 유표는 이 말을 듣지 않고 망성이다가 마침내 관도의 싸움에서 승리한 조조에게 화를 당하고 만다.

[원문]曹操必破袁紹 後來功吾等矣 吾等留觀望 將受怨於兩便 故隨强操 賢且爲萬全之策矣

[예문]
▷ 장기주택대출은 경기나 금리변화에 흔들리던 가계신용 문제를 해결하는데도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맘먹고 짓는 보약 같은 정책이다. 허술함이 전혀 없는 만전지책(萬全之策)이었으면.<2003 머니투데이>


■ 망국지음 亡國之音[망할 망/나라 국/어조사 지/노래 음]

☞나라를 망치는 음악이란 뜻. 음란하고 사치한 음악. 망한 나라의 음악. 애조(哀調)를 띤 음악.
[동] 망국지성(亡國之聲). [유] 정위지음(鄭衛之音).

[출전]『韓非子』〈十過篇〉.『禮記』〈樂記〉
[내용1] 춘추 시대에 있었던 이야기이다. 어느 날 위(衛)나라 영공(靈公)이 진(晉)나라로 가던 도중 복수[ 水:산동성(山東省) 내] 강변에 이르자 이제까지 들어본 적이 없는 멋진 음악 소리가 들려 왔다. 영공은 자기도 모르게 멈춰 서서 잠시 넋을 잃고 듣다가 수행중인 사연(師涓)이란 악사(樂師)에게 그 음악을 잘 기억해두라고 했다. 이윽고 진나라에 도착한 영공은 진나라 평공(平公) 앞에서 연주하는 음악을 들으며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 들은 새로운 음악'이라고 자랑했다.

 당시광(師曠)이라는 유명한 악사가 있었는데 그가 음악을 연주하면 학이 춤을 추고 흰 구름이 몰려든다는 명인이었다. 위나라 영공이 새로운 음악을 들려준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입궐한 사광은 그 음악을 듣고 깜짝 놀랐다. 황급히 사연의 손을 잡고 연주를 중지시키며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새로운 음악이 아니라 '망국의 음악[亡國之音]'이오."

 이 말에 깜짝 놀란 영공과 평공에게 사광은 그 내력을 말해 주었다. "그 옛날 은(殷)나라 주왕(紂王)에게는 사연(師延)이란 악사가 있었사옵니다. 당기 폭군 주왕은 사연이 만든 신성백리(新聲百里)라는 음미(淫 :음란하고 사치함)한 음악에 도취하여 주지육림(酒池肉林)속에서 음일(淫佚)에 빠졌다가 결국 주(周)나라 무왕(武王)에게 주벌(誅伐)당하고 말았나이다. 그러자 사연은 악기를 안고 복수에 투신 자살했는데, 그 후 복수에서는 누구나 이 음악을 들을 수 있사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망국의 음악'이라고 무서워하며 그곳을 지날 땐 귀를 막는 것을 철칙으로 삼고 있사옵니다."

[내용2]《예기(禮記)》〈악기(樂記)〉에도 이런 기록이 있다. "복수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는 '망국지음'이다."

[원문]因復留宿.明日而習之, 遂去之晉.晉平公觴之於施夷之臺.酒 , 靈公起曰: "有新聲, 願請以示." 平公曰: "善."乃召師涓, 令坐師曠之旁, 援琴鼓之.未終, 師曠撫止之, 曰: "此亡國之聲, 不可遂也.<『韓非子』>
"治世之音, 安以樂, 其政和. 亂世之音, 怨以怒, 其政乖.
  亡國之音, 哀以思, 其民困<『禮記』>


■ 망매해갈 望梅解渴 [바랄 망/ 매화나무 매/ 풀 해/ 목마를 갈]

☞ 매실을 머리에 떠올리기만 해도 입안에 침이 괴어 갈증이 풀린다는 말.
[동]매림지갈 梅林止渴 [그칠 지/목마를 갈]

[출전]『世說新語』『삼국지연의』
[내용1]위(魏)나라의 조조(曹操) 군대가 행군을 하고 있었다. 때는 한여름이어서 무더운 날씨에 장병들은 몹시 지쳐 있었다. 게다다 갈증으로 목이 타는데 마실 물은 떨어진지 오래다.  그래도 참고 얼마를 더 행군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이제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할 만큼 전군(全軍)이 지치고 목말라 했다. 일대의 지리에 밝은 부하에게 물어봐도 샘은 한참 더 가야 있다고 했다. 

조조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조조가 누군인가. 지모(智謀)에 뛰어난 난세(亂世)의 간웅(奸雄)이 아니던가. 선두에 섰던 조조는 문득 절묘한 계책을 생각해내고는 큰 소리로 외쳤다.  "모두들 힘을 내라. 조금만 더 참아라. 여기서 가까운 곳에 매화나무 숲이 있다. 거기엔 가지가 휘도록 매실이 주렁주렁 달려있다고 한다. 거기 가서 우리 모두 갈증을 풀어보자." 

매실이란 말을 듣자마자 모든 장병들의 입안은 침으로 흥건해졌다. 그 시디신 매실을 연상하고도 침이 나오지 않을 장사는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기운을 되찾은 장병들은 무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질서정연하게 진군을 할 수 있었다.≪世說新語≫

[내용2]유비가 허창에 있던 조조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조조는 유비를 승상부로 오도록 하고는 손을 잡으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조금 전 후원의 매실이 파랗게 익은 것을 보고 작년 장수를 정벌하기 위해 행군했을 때 물이 떨어져 병사들이 고통을 겪던 일이 생각났소.  나는 그때 한 가지 묘안이 떠올라 말채찍으로 앞을 가리키며 병사들에게 이렇게 말햇소.  '저 앞에는 광활한 매실나무 숲이 있는데, 그 매실은 아주 시고도 달아 우리들이 목을 축이기에 충분할 것이다.' 

 이말을 들은 병사들은 매실의 신맛을 생각하고는 입 안에 침이 돌아 갈증을 느끼지 않게 되었소. 그리고 오래지 않아 물 있는 곳을 찾았소.  오늘 정원의 매실을 보니 그때의 일이 떠올라 그대와 함께 담소하며 술을 마시고 싶어 불렀소."  

 조조는 유비의 인물됨을 익히 알고 있었다. 이런 말을 통해 유비의 속마음을 떠보려고 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삼국지연의≫  


■ 망양보뢰 亡羊補牢 [잃을 망/양 양/기울 보/외양간 뢰]

☞양을 잃고서 그 우리를 고친다. 실패한 후에 일을 대비한다. 이미 때가 늦었다.
[속담]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유]死後藥方文(사후약방문) ,晩時之嘆(만시지탄)
[내용]전국시대(戰國時代) 초(楚)나라에 莊辛(장신)이라는 충신이 있었다.하루는 國王의 측근들이 나라를 그르치는 것을 보다 못해 장차 나라가 위태롭게 될 것이라고 楚 襄王(양왕)에게 간했다가 도리어 욕설만 잔뜩 듣고 말았다.『이 놈의 늙은이가 돌았나 보군! 고의로 험악한 말을 하여 민심을 혼란스럽게 하다니….』『王께서 계속 그 者들을 총애하신다면 아마도 그런 위기는 반드시 닥쳐오고야 말 것입니다.저는 趙(조)나라로 몸을 숨기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莊辛의 말은 적중했다. 과연 그가 楚를 떠난지 5개월도 되지 않아 秦(진)은 楚를  쳐서 크게 깨뜨렸고,襄王은 陽城(양성)으로 도망치고 말았다. 후회한 襄王은 급히 신하를 보내 莊辛을 불러왔다.그리고는 무슨 방법이 없을까  하고 물었다.莊辛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토끼를 보고 사냥개를 불렀다면  아직 늦지 않다고 하더군요.또 도망친 양(亡羊)을 보고 외양간을 고쳐도(補牢)  아직 늦지 않다고 하더군요.』 물론 그가 한 말은 襄王의 어리석음을 비꼰 것이다

[원문]莊辛去之趙. 留五月, 秦果擧  ,巫,上蔡,陳之地.襄王流 于城陽. 于是使人發騶, 徵莊辛于趙. 莊辛曰: "諾." 莊辛至, 襄王曰  "寡人不能用先生之言, 今事至于此, 爲之奈何?" 莊辛對曰: "臣聞鄙語曰 '見 而顧犬, 未爲晩也; 亡羊而補牢, 未爲遲也.' 臣聞昔湯, 武以百里昌, 桀 紂以天下亡. 今楚國雖小, 絶長續短, 猶以數千里, 豈特百里哉?

[예문]
▷ 시설관리공단은, 내년까지 종합방재센터를 만들고 오는 2009년까지 공기의 질을 자동으로 측정하는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계획입니다. 하지만, 소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비난은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2006 KBS뉴스>

▷ 바다이야기에 대해 한말씀드리겠다.어제까지 정부와 여당이 몇 번이나 대국민 사과를 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그리고 소는 이미 잃은 것 같지만 외양간이라도 제대로 고쳐야 겠다. 국회가 외양간 고치는데 역할을 제대로 해야...<2006 열린우리당 브리핑>


■ 망양지탄 望洋之歎[바랄 망/바다 양/어조사 지/탄식할 탄]

☞넓은 바다를 보고 감탄한다는 뜻. 곧 남의 위대함에 감탄하면서 자신의 힘이 닿지 못함을 부끄러워하는 탄식

[출전]『莊子』 추수편
[내용]옛날 황하 중류의 맹진(孟津:하남성 내)에 하백(河伯)이라는 하신(河神)이 있었다. 어느 날 아침, 그는 금빛 찬란히 빛나는 강물을 보고 감탄하여 말했다.
"이런 큰 강은 달리 또 없을 거야."
"그렇지 않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늙은 자라였다.
"그럼, 황하보다 더 큰 물이 있단 말인고?"
"그렇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해 뜨는 쪽에 북해(北海)가 있는데, 이 세상의 모든 강이 사시 장철 그곳으로 흘러들기 때문에 그 넓이는 실로 황하의 몇 갑절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런 큰 강이 있을까? 어쨌든 내 눈으로 보기 전엔 못 믿겠네."
황하 중류의 맹진을 떠나 본 적이 없는 하백은 늙은 자라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이윽고 가을이 오자 황하는 연일 쏟아지는 비로 몇 갑절이나 넓어졌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하백은 문득 지난날 늙은 자라가 한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그는 이 기회에 강 하류로 내려가 북해를 한번 보기로 했다. 하백이 북해에 이르자 그곳의 해신(海神)인 약(若)이 반가이 맞아 주었다.
"잘 왔소. 진심으로 환영하오."
북해의 해신이 손을 들어 허공을 가르자 파도는 가라앉고 눈앞에 거울 같은 바다가 펼쳐졌다.
'세상에는 황하 말고도 이처럼 큰 강이 있었단 말인가‥….'
하백은 이제까지 세상 모르고 살아온 자신이 심히 부끄러웠다.
"나는 북해가 크다는 말을 듣고도 이제까지 믿지 않았습니다. 지금 여기서 보지 않았더라면 나는 나의 단견(短見)을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북해의 신은 웃으며 말했다.
"'우물 안 개구리[井中之蛙]'였구려. 대해(大海)를 모르면 그대는 식견이 낮은 신으로 끝나 버려 사물의 도리도 모를 뻔했소. 그러나 이제 그대는 거기서 벗어난 것이오."


망양지탄 亡羊之歎[잃을 망/양 양/어조사 지/탄식할 탄]

☞양을 잃었으나 길이 많고 복잡하여 어디로 도망갔는지 모름을 한탄한다. 학문이란 그 범위가 넓고 복잡하여 얻는 것이 적음을 한탄한다.
[동]多岐亡羊(다기망양)
[출전]列子
[내용]양자의 이웃집에서 양 한 마리가 도망을 했다. 양의 주인이 동네 사람들을 이끌고 양자에게 노복(奴僕) 청하여 양을 쫓아가려 하자, 양자가 물었다. "단 한 마리의 양을 잃었는데 어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뒤쫓아가는고." 이웃집 사람이 대답하였다. "도망간 쪽에는 갈림길이 많기 때문이오." 얼마 뒤에, 그들이 피곤한 몸으로 돌아와서 양을 잃었다고 하였다. 양자가 양을 잃은 까닭을 묻자, "갈림길을 가면 또 갈림길이 있어서, 양이 어디 갔는지 모르게 되어 버렸소(多岐亡羊)."

양자는 그 말을 듣고는 묵묵히 앉아 입을 떼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하루종일 웃는 얼굴 한번 보이지 않았다. 제자들이 기껏해야 양 한 마리를 잃은 일이요, 더구나 자기의 양도 아닌데, 그렇게 침울해 있는 것은 이상하다 생각하고, 까닭을 물어도 대답이 없었다. 제자인 맹손양(孟孫陽)은 스승의 고민을 알지 못하고 선배 제자인 심도자(心都子)에게 양자가 침묵하는 까닭을 물으니 심도자는 "단 한 마리의 양이라 할지라도, 갈림길에서 또 갈림길로 헤매어 들어가서 찾다가는 결국 양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하물며 학문의 길은 어떻겠느냐? 목표를 잃고 무수한 학설들에 빠져 헤맨다면 아무리 노력한들 그 또한 무의미한 것 아니겠느냐." 하였다.

《장자(莊子)》 변무편(騈拇篇)에도 양을 잃은 이야기가 있다. 남녀 종이 책을 읽고 주사위놀음을 하다가 양을 잃었다는 이야기로, 이 곳에서도 주위의 사물이나 현상에 휩쓸리다 보면 자기의 본분을 잊게 된다는 비유로 사용되고 있다. 망양지탄(亡羊之歎)이라고도 한다.

학문에는 지식의 집적과 이론의 분석이 필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부질없이 지엽말절을 꼬치꼬치 캐고 살피는 일에 빠져서 근본 목표를 잃어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란 것을 풍자한 이야기이다.

[원문]心都子曰:"大道以多 亡羊, 學者以多方喪生. 學非本不同,非本不一, 而末異若是. 唯歸同反一, 爲亡得喪. 子長先生之門, 習先生之道, 而不達先生之 也, 哀哉!"  


■ 망운지정 望雲之情[바랄 망/구름 운/어조사 지/뜻 정]

타향에서 고향에 계신 부모를 생각함. 멀리 떠나온 자식이 어버이를 사모하여 그리는 정.
[동]白雲孤飛(백운고비)

[출전]당서(唐書)
[내용] : 唐나라「적 인걸(狄仁傑)이 병주 법조참군(幷州法曹參軍)에 있을 때 그 어버이는 하양(河陽) 땅 별업(別業)에 계신데, 인걸이 태행산(太行山)에 올라 반복하여 돌아보면서 흰구름이 외롭게 나르는 먼 곳을 좌우 사람에게 일러 말하되“내 어버이가 저 구름이 나는 아래에 계신데, 멀리 바라만 보고 가서 뵙지 못하여 슬퍼함이 오래되었다.”하고 구름이 옮겨 간 뒤에 이에 산에서 내려왔다.

 망운지정이란 이렇게 타향에서 자신도 신고를 겪지만 고향의 부모를 그리는 자식의 정을 가리키는 것이다. 후일 그의 평판이 높다는 말을 들은 측천무후는 다시 그를 재상으로 등용하였고, 재상이 된 후 그는 장간지()·요승() 등을 추천하여 부패한 정치를 바로잡아 측천무후의 신임을 얻었다. 어느 날 측천무후가 상서랑()으로 합당한 인물을 추천하라고 하자, 서슴없이 아들 광사()를 추천하는 등 일 처리에 사사로움이 없었다 한다.

[원]狄仁傑이 授幷州法曹參軍이어늘 其親은 在河陽別業이라 仁傑이 登太行山하여 反顧見白雲孤飛하고 謂左右曰“吾親이 舍其下로다 瞻璥이 久之니라”하고 雲移에 乃得去하니라.
** 狄(성 적) 授(줄 수) 舍(머무를 사) 瞻(볼 첨) 璥(슬플 창)

■ 망자계치 亡子計齒[죽을 망/아들 자/헤아릴 계/이 치]

 ☞죽은 자식 나이 세기. 이미 지나간 쓸데없는 일을 생각하며 애석하게 여기다. 이미 그릇된 일은 생각하여도 아무 소용이 없음
[예문]
▷ 변대치가 땅을 치며 후회하고 있었으나 망자계치라 공릉 대사만 원망하고 있었다.<방수윤-천하대란>

■ 망자재배 芒刺在背 [ 가끄라기 망/ 가시 자/ 있을 재/ 등질 배] 

  ☞가시를 등에 진다. 등 뒤에 자기가 꺼리고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어서 마음이 편치 않음

[출전]『한서(漢書)』 곽광전
[내용]한나라 선제가 보위에 올랐을 때의 일이다.  선제가 고조의 묘를 알현하기 위해 출발할 때, 그의 호위를 담당한 자는 대장군 곽광이었다.  곽광은 일찌기 무제의 유조를 받들어 대사마대장군으로서 소제를 도왔으며, 그 다음 창읍왕이 음란한 행실을 계속하자 그를 폐위시켜 중기의 정치실력자 선제를 임금의 자리에 세웠던 인물이다. 

 곽광의 권력이 하늘을 뚫을 정도였으므로 선제는 내심 그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래서 곽광과 함께 가는 것이 마치 가시를 등에 진것과 같이 불편하였다.  이 당시 그의 표정은 마치 무엇엔가 위협을 받는 듯 불안해 하며 굳어 있었다.  그 후 거기장군 장안세가 곽광을 대신하여 선제를 모신 적이 있었는데, 이때는 편안하고도 조용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 망중한 忙中閑 [바쁠 망/가운 데 중/한가할 한]

☞바쁜 가운데에서도 한가로운 때.
[예문]
▷ 그는 망중한에 창탄을 즐기곤 하였다. 창탄
▷ 병조 판서 이덕형은 망중한 신하지마는 일단 적괴의 입에서 이름이 나온 이상 안연히 벼슬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박종화, 임진왜란≫
▷ 고경명이 망중한 백수 서생으로 의기를 짚어 국운을 회복하려 일어나니, 시골 선비와 백성들은 모두 다 의거에 감동이 되어….≪박종화, 임진왜란≫
▷ 이종석 통일부 장관의 취미는 낚시다. 평소 서울 근교 저수지에 가서 낚시 찌를 드리우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수를 읽는 게 그의 유일한 망중한이라고 한다. <2006 국민일보>

■ 망진막급 望塵莫及 [바랄 망/ 티끌 진/ 말 막/ 미칠 급 ] 

 ☞먼지를 바라보고 미치지 못한다. 손에 넣지 못하는 것.  

[출전]『남사(南史)』
[내용]남북조시대 때 송나라의 복양에 오경지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학문이 깊고 덕망이 높은 사람이었다.  양주의 태수로 부임된 왕의공은 그에게 자신의 일을 보좌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때 오경지는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는 것이 내심 기뻤으므로 서슴없이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훗날 왕의공이 업무상의 과실로 인해 처형을 당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이때 오경지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는 자신에게는 다른 사람을 보좌할 만한 능력이 없다며 관직을 버리려고 하였다.  그런데 오흥태수로 임명된 왕곤이 오경지에게 공조자리를 맡아달라고 했다. 오경지는 왕곤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일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습니다. 지난번 왕의공 태수가 저를 존중해 주어 바쁘게 뛰어다녔지만 한 일이 없습니다. 이런 저에게 관직을 맡아달라고 하는 것은 물고기를 나무 위에서 기르고, 새를 물 속에서 기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는 인사도 없이 그 자리를 떠났다. 왕곤이 황급히 그를 뒤 따라갔으나 흙먼지만 보일 뿐 따라갈 수가 없었다.  . 

■ 매사마골 買死馬骨 [ 살 매/ 죽을 사/ 말 마/ 뼈 골] 

 ☞죽은 말의 뼈를 산다. 귀중한 것을 손에 넣게 위해 먼저 공을 들임.  
[동]先從自始(선종자시)/先施於隗(선시어외) /先從隗始(선종외시) : 먼저 외로부터 시작하라. 큰 일을 이루려면 먼저 작은 일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千金買骨(천금매골) / 請自隗始(청자외시)

[내용]춘추전국시대에 어떤 나라의 왕이 천리마를 구하려고 모든 노력을 기울였으나,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했다. 그때 어떤 자가 나타나 천리마를 꼭 구해 오겠다고 했다. 왕은 그의 말을 믿고 천리마가 당도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과연 그자는 약속대로 천리마를 구해왔다. 그런데 그 천리마는 천리를 달릴 수 있는 튼튼한 다리를 가진 살아 있는 명마가 아니라 죽은 말이었다. 

왕은 화를 내며 물었다.  "어찌된 일이냐? 천리마가 오는 도중에 죽은 것이냐? 아니면 죽은 말을 사서 가져 온 것인지 사실대로 말해 봐라."  "이미 죽은 말을 샀습니다. 그 가격은 오백 금입니다." 왕이 이 말을 듣고 기가 막힐 노릇이었으나 영문이나 들어 보려고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히고 되물었다.  "왜 죽은 말을 샀느냐?"  "대왕, 천리마는 귀한 말이라 모두들 집에 숨겨 놓지 결코 내놓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대왕께서 오백금에 샀다고 소문이 나 보십시오. 

그것도 산 천리마가 아니라 죽은 천리마가 오백 금이라면 앞을 다투어 천리마를 갖고 올 것입니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천리마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대왕 앞에 줄을 서게 될 것입니다." 이 소문이 전해지자 과연 천리마를 가진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나타났고, 왕은 천리마를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었다. 


■ 매점매석 買占賣惜 [살 매/가질 점/팔 매/아낄 석]

☞사서 쌓아두로 팔기는 꺼림
[예문]
▷ 대추·밤·감·배며, 석류·귤·유자 등속의 과일을 모조리 곱절의 값으로 사들였다. 허생이 과일을 몽따 쓸었기 때문에 온 나라가 잔치나 제사를 못 지낼 형평에 이르렀다. 얼마안 가서 허생에게 배 값으로 과일을 팔앗던 상인들이 도리어 열 배의 값을 주고 사 가게 되었다. -박지원, 『'허생전(許生傳)』' 中에서

▷ IMF한파로 일부에서 사재기가 성행하는 가운데 커피를 매점매석한 식품유통업자가 경찰에 고발됐다. 보건복지부는 13일 "인천 남부경찰서가 인천시 남구 용현동에서 커피대리점을 하는 이모씨를 커피 매점매석 혐의로 적발, 물가안정법 위반죄 적용여부를 문의해 옴에 따라 이씨에 대한 고발장을 경찰에 접수시켰다"고 밝혔다. <조선일보> 


■ 매처학자 梅妻鶴子[매화 매/아내 처/학 학/아들 자]

☞매화를 아내로 삼고 학을 자식으로 삼음. 풍아한 생활.
[출전]시화총귀(詩話總龜)』
[내용]송나라에 임포라는 자가 살았다. 임포는 평생 동안 장가도 들지 않고 고요한 가운데 고달픈 삶을 살아간 시인이다. 그는 영리를 구하지 않는 성격을 흠모하여 그의 시 또한 청고하면서 유정한 풍모를 드러내고 있다. 그는 시명으로 평가되는 것을 꺼려서 지은 시를 많이 버렸고 자신의 시가 후세에 전해질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기록하지도 않았다.임포는 서호 근처의 고산에서 은둔 생활을 했는데, 자주 호수에 조각배를 띄워 근처 절에 가서 노닐었으며, 동자는 학이 나는 것을 보고 객이 온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임포는 아내와 자식이 없는 대신 자신이 머물고 있는 곳에 수많은 매화나무를 심어 놓고 학을 기르며 즐겁게 살았다.그래서 사람들은 임포는 매화아내에 학 아들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이 이후로 후세 사람들은 '매처학자'라는 말로써 풍류로운 생활을 한는 것을 비유하게 되었다.


■ 맥구읍인 麥丘邑人 [ 보리 맥/ 언덕 구/ 고을 읍/사람 인] 

☞맥구읍 의 사람.  곱고 덕스럽게 늙은 사람, 곧고 슬기로워 인생의 바른 길을 인도할 수 있는 노인 
[출전]『유향의 신서 』잡사

[내용]전한(前漢) 말 유향(劉向)이 지은 《신서(新序)》 잡사(雜事)편에 보이는 다음과 같은 내용에서 비롯되었다.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맥구(麥丘)로 사냥을 나갔다가 우연히 곱게 늙은 한 노인을 만나게 되었다. 노인의 풍채에 반한 환공이 노인에게 나이를 물으니 여든세 살이라고 하였다. 감탄한 환공은 "그렇게 장수하시니 좋으시겠소. 당신의 장수로써 나를 위해 기도해 주지 않겠소?" 하고 물었다. 노인은 다음과 같이 축원하였다. "주군을 축원합니다. 주군께서 대단한 장수를 누리게 하소서. 돈이나 옥은 천한 것이고, 사람은 귀한 것입니다." "좋은 말이오. 지극히 덕스러운 자는 외롭지 않소. 다시 한말씀 해주시구려."

환공과 노인의 대화는 계속되었다. "주군을 축원합니다. 주군으로 하여금 배우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하고, 아래 사람들에게 묻는 것을 싫어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현명한 자는 항상 곁에 간언하는 사람을 있게 합니다." "옳은 말이오. 지극히 덕스러운 자는 외롭지 않소. 한말씀만 더해 주시오." "주군을 축원합니다. 주군이 신하들과 백성들에게 죄를 짓지 않게 해주십시오."

환공은 이 말에 안색을 바꾸고 화를 내며 말하였다. "나는 아들이 아버지에게 죄를 짓고, 신하가 군주에게 죄를 짓는다는 말은 들었지만, 군주가 신하에게 죄를 짓는다는 말은 일찍이 듣지 못했소. 이는 앞의 두 말과는 다른 것이니 고치시오." 그러자 노인은 앉아 절을 하고는 일어나며 말하였다. "이 말은 앞의 두 말이 자란 것입니다. 자식이 애비에게 죄를 짓는 것은 주위의 친척 때문이고, 신하가 군주에게 죄를 짓는 것은 주위의 편벽된 신하 때문이니, 모두 오해를 풀어 사면해 줄 수 있습니다. 옛날 걸(桀)은 탕(湯)에게 죄를 지었고, 주(紂)는 무왕(武王)에게 죄를 지었습니다. 이것은 군주가 신하에게 죄를 지은 것으로 오늘날까지 사면 되지 못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환공은 크게 기뻐하며 노인을 수레에 태우고 돌아와 예를 다하였다. 이와 같이 맥구읍인이란 곧고 슬기로워 인생의 바른 길을 인도할 수 있는 노인을 가리킨다.<두산백과>


■ 맥수지탄 麥秀之歎[보리 맥/이삭 수/어조사 지/탄식할 탄]

☞보리만 무성하게 자란 것을 탄식함. 고국의 멸망을 탄식하다.
[동]亡國之歎(망국지탄). 亡國之恨(망국지한) : 나라가 망함을 탄식함.麥秀之歌(맥수지가)

[출전]『史記』〈宋微子世家〉.《『詩經』〈王風篇〉
[내용] :은나라의 마지막 왕 주왕(紂王)은 夏의 걸왕(桀王)과 함께 폭군의 대표적인 인물로 술을 좋아하고 여자도 좋아하였다. 특히 달기(己)라는 여자를 사랑하여 그녀의 말은 무엇이나 들어주었다. 그는 사구(沙丘)에 큰 놀이터와 별궁을 지어 두고 많은 들짐승과 새들을 거기에 놓아길렀다. 술로 못을 만들고 고기를 달아 숲을 만든 다음남녀가 벌거벗고 그 사이에서 밤낮없이 술을 퍼마시며 즐겼다"(酒池肉林주지육림) 고 하였다.

이러한 은나라 주왕에게도 훌륭한  세 명의 신하가 있었다. 논어에서 공자는 "미자(微子)는 떠나고 기자(箕子)는 종이 되고 비간(比干)은 간하다가 죽었다"고 하며 은 나라에는 세 어진 이가 있었다고 회고하였다. 그러나 주왕은 나라를 망치려고 어진 세 신하의 간절한 충언을 듣지 않았다. 미자는 주왕의 이복형으로 아무리 간해도 주왕이 듣지 않자 국외로 망명을 하였다.

기자(箕子)는 주왕에게 간곡한 충고를 했으나 주왕이 들어주지 않자 목숨이나 부지하여 나라를 건지는 방법을 찾으려고 거짓으로 미친 사람 행세를 하며 남의 집 종이 되어서 세상을 숨어살았다. 비간(比干)은 극간을 하다가 능지처참을 당하고 은나라는 결국 망하고 주나라가 세워지게 되었다.

국외로 망명했던 기자는 무왕을 보좌하다가 조선의 왕으로 봉해진다.그래서  주나라의 도읍으로 가던 중 옛 은나라의 도읍을 지나게 되었다. 번화하던 도읍은 흔적도 없어지고 황폐해진 궁궐 자리엔 보리와 잡초만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것을 보고 지난날의 감회에 젖어 맥수지가(麥秀之歌)를 지어 殷의 도읍은 간데 없고 궁궐터에 보리와 기장만이 무성함을 탄식하였다.

「보리이삭은 쑥쑥 자라 있고[麥秀漸漸兮]
 벼, 기장도 잘 자라네[米黍油油]
 저 교활한 아이여, [彼狡童兮]
 나와 함께 하기를 좋아하지 않았도다[不與我好兮]

** 諫(간할 간) 漸(점점 점) 黍(기장 서) 油(기름 유) 狡(교활할 교)

[참고1]기자동래설--기자는 주왕의 횡포를 피하여 혹은 주나라 무왕이 조선왕으로 책봉함에 따라 조선에 들어와 예의,밭갈이,누에치기,베짜기와 사회교화를 위한 팔조지굘를 가르쳤다고 하나 이는 후세사람들에 의한 조작이라는 설이 지배적임,왜냐하면 진나라의 학자인 두예가 그의 저서 <춘추석례>의 주에서 기자의 무덤이 양나라의 몽현에 있다고 적고 있는 만큼 기자동래설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임

고조선을 세가지 단게로  나눔니다

1. 단군조선;

기원전 2333년에  단군이  고조선을 세운시기 신석기시대 씨족사회로    부족국가는 아니나  씨족의 무리가  단군신앙을  숭배햇지요  그러나  이시대의  기록은  아무것도  남아  잇지않읍니다  나는  그것으로 보아  아마  전설속에  나오는  배달국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단군이  박달나무임금이란  뜻인데   배달이라는  뚯이  밝다에서 왓다고  합니다  배달을중국에서 한문으로  표기과정에서   박달나무 단자로 쓴것 같읍니다 그리고  배달국을  나라로 인정하기  싫어서  임금 군자를  붙인것  같읍니다

2.청동기시대[기자조선];

우리나라  학설은  청동기 문화가  기원전  12세기경에  시베리아로  부터  들어온것으로  되어잇으나  중국 춘추전국시대   기록에 의하면  중국 주나라가  기자를 왕으로  봉해  동쪽으로  갓다는  공자님  기록이  남아 잇읍니다  이시기부터  고조선은  실제  존재하는  역사시대가  되는겁니다  그러나  그당시 주나라는  황화강 상류의  국가엿읍니다   그러니  기자를 왕으로  봉해서  동쪽으로 같다는것은  고조선이  아니라 황화강  하류의[산동반도] 제나라를 이야기  하는것같읍니다 주나라는   우리나라 서해안을  국경선으로  접하지 못하고  춘우전국시대와서 우리나라와 국경선을  접합니다

3.평양조선;

고조선이 원래는 요동에 잇엇으나   기원전 5세기경에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연나라와 크게 전쟁을 붙어  고조선이  이천여리의  땅을 잃고  패하게  됩니다  그결과로 고조선의 국경선이  만리장성에서  요하강서쪽의 땅을 잃게 되자  고조선은  요동에서  일부는  송화강 유역으로  가 부여를  세웟고   다른 일부는 평양으로  수도를 옮기게 됩니다 이때부터  고조선이  망할때까지  평양을 수도로 삼고 활약합니다

4.위만조선

고조선이 평양으로  옮겨와  체제를 정비하고 요동과 요서지역을 회복할때  중국에서는  진나라가 망하고  초나라의 항우와 한나라가  패권을  다투자  전쟁을 피해 산동반도의  고조선 유민들이  배를 타고와 한강이남에 정착하며  진을 세웟고   북경주변의  고조선  유민[위만세력]들이 만리장성을 넘어  요서지역으로  들어오자 고조선의 왕은  철기문명을  위만을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하고  중국침략에  대비하고 송화강 유역에  부여와 한강이남의 진을  정벌하려 하자 위만이  쿠테타를 잃으켜  정권을  잡고  왕이 되엇읍니다  이시기를 위만 조선이라 부릅니다

5.한4군

위만조선이  부여와 진을 속국으로  삼고  한과 무역을 직접 못하게 막으면서  중게 무역으로  부를 쌓자    한무제는  군사를 잃으켜  위만 조선을 침략하고   평양조선을  점령하고  4개의 한라라의 군으로  편입해 버립니다   그군의 위치가 한반도  북서부에[평안도와 황해도 일부지역] 위치합니다   이때부터  우리나라의 부족국가들은  한사군과 전쟁을 통해  삼국으로   재편됩니다 

[참고2]
▷ ≪황현 絶命詩≫中

    鳥獸哀鳴海岳嚬 (조수애명해악빈) 새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네.
    槿花世界已沈淪 (근화세계이침륜) 무궁화 온 세상이 이젠 망해 비렸어라.
    秋燈掩卷懷千古 (추등엄권회천고)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지난 날 생각하니,
    難作人間識字人 (난작인간식자인)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하기 어렵기만 하구나.

▷ 길재의 시조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匹馬)로 도라드니
    산천(山川)은 의구(依舊)하되 인걸(人傑)은 간 듸 업다.
    어즈버 태평연월(太平烟月)이 꿈이런가 하노라

    <풀이>
    오백년 도읍지(고려의 옛 서울)를 한 필의 말에 의지해 돌아보니
    산천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는데, 당대의 훌륭한 인재들은 간 데 없구나.
    아아, 태평세월을 지냈던 그 때가 꿈처럼 허무하기만 하구나. 

■ 맹귀우목 盲龜遇木[눈멀 맹/거북 귀/만날 우/나무 목]

☞눈먼 거북이가 다행히 물에 뜬 나무를 붙잡게 되었다. 불법을 만나기가 어려움.매우 힘든 행운.
[유사어]千載一遇 천재일우 / 盲 者 正 門 맹자정문 : 장님이 문을 바로 찾아 들어간다는 뜻으로, 무능하고 우둔한 사람이 요행히 사리에 맞는 일을 함을 비유함.=盲者直門 맹자직문
[출전]열반경

[내용]이 세상에 생명으로 태어나기가 어렵고, 또 생명 중에서도 사람으로 태어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눈먼 거북이가 구멍 뚫린 널빤지를 만나 뭍에 올라오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넓고 넓은 바다 속에 눈먼 거북이가 있다.  이 거북은 뭍에 올라갈 뜻을 품고 백년에 한 번씩 바다 위로 솟아 오른다.  그러나 그는 눈이 멀어 있기 때문에 자기 외의 다른 물체와 만나지지 않으면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그러한 눈먼 거북이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구멍 뚫린 널빤지인데 이역시 아무런 약속 없이 그적 맹목적으로 출렁대는 물결에 맡겨 사해를 떠돌아 다니므로, 거북이 해상의 어느 시점에 떠 올랐을 때 마침 그와 만나진다는 것은 몇 천만 몇 억의 시공적 교차 중의 하나인 만큼이나 어려운 노릇이다.
 거북이 떠 올랐을 때 널빤지가 다른 바다 위를 표류하고 있다면 거북은 별 수 없이 다시 바다 밑으로 내려가 다시 1백년을 기다렸다가 다음 떠오를 시기를 기다려야 한다.  마침 널빤지가 잠재해 있는 거북의 머리 위에 와 있다손 치더라도 그 또한 거북이 떠 오르기 전에는 역시 만나지지 못하게 된다. 

[예문]
▷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문화재 강연회 장에서의 한 스님과의 운명적 만남, 이것은 나에게 '맹귀우목(盲龜遇木)'의 인연이었다. 사찰 답사를 통해 배웠던 절에서의 기본적인 예 절들이 다시 보이고 합장하는 두 손이 조용히 떨렸다<삶과 생명 나누기>에서 .

▷ 부처님께서는 불법 만나기 어려움을 ‘향수해 맹귀우목’의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불교의 대우주관에 사주(四州)를 싸고 있는 넓고 넓은 향수해 바다에 오래 전부터 눈먼 거북이 한 마리가 살고 있었는데, 넓 은바다를 헤엄쳐 다니다가 몸을 의지할 데가 없어 쉬지 목하고 있을 때 마침 그때 그 바다에 구멍 뚫린 나무조각 하나가 떠다니는데 아주 우연히 그 나무조각을 만나서 뚫린 구멍으로 머리를 쏙 내밀고 의지해서 잠시 쉴 수 있다는 비유로 부처님의 법을 만나는 것이 아주 어렵고 중함을 말씀하셨습니다--99 신흥사 환영사中에서 .


■ 맹모삼천 孟母三遷[클 맹/어미 모/석 삼/옮길 천]

☞맹자 어머니가 맹자를 가르치기 위하여 세 번 집을 옮긴 고사. 아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좋은 환경을 가려서 산다.
[동]孟母三遷之敎, 三遷之敎 [유]근주자적(近朱者赤)·근묵자흑(近墨者黑), 귤화위지(橘化爲枳)·남귤북지(南橘北枳),마중지봉麻中之蓬--환굥의 중요성

[출전]『列女傳』母儀傳(모의전)
[내용] :「옛날 맹자의 어머니가 묘지 근처로 이사를 갔는데 그 때에 맹자 나이 어려 보고 듣는 것이 상여(喪輿)와 곡성(哭聲)이라 늘 그 흉내만 내므로 맹자의 어머니는 이곳이 자식 기를 곳이 못 된다 하고 곧 저자 근처로 집을 옮겼더니 역시 맹자는 장사의 흉내를 냈다. 맹자의 어머니는 이곳도 자식 기를 곳이 아니라 하고 다시 서당(書堂) 근처에 집을 정하니 맹자가 늘 글 읽는 흉내를 내므로 이곳이야말로 자식 기르기에 합당하다 하고 드디어 거기에 안거(安居)하였다.

[원]孟軻之母는 其舍가 近墓러니 孟子之少也에 嬉戱에 爲墓間之事하여 踊躍築埋어늘 孟母曰 此非所以居子也라하고 乃居舍市하니 其嬉戱에 爲賈衒이어늘 孟母曰 此非所以居子也라하고 乃徙舍學宮之傍하니 其嬉戱에 乃設俎豆하여 揖讓進退어늘 孟母曰 此眞可以居子矣로다하고 遂居之하니라.
** 軻(멍에 가) 嬉(놀 희) 戱(놀 희) 踊(뛸 용) 躍(뛸 약) 築(쌓을 축) 埋(묻을 매) 賈(장사 고) 衒(팔 현) 徙(옮길 사) 俎(제기 조) 揖(읍할 읍)


■ 맹인할마 盲人할馬 [눈멀 맹/사람 인/애꾸눈 할/말 마]

☞장님이 애꾸눈 말을 타고 다님. 위험한 행동 [원] 盲人騎 馬 夜半臨深池 

[출전]『世說新語』
[내용] :동진(東晉)의 화가 고개지(顧愷之)는 중국 회화사(繪畵史)에서도 두드러진 인물로 기록되고 있다. 그는 그림뿐만 아니라 박학다재(博學多才)하여 당대의 문장가에다 대사마참군(大司馬參軍)을 지낸 장군이기도 했다.  성품도 소탈하여 우스갯소리로 주위를 웃기곤 했다. 그는 환현(桓玄) 은중감 (殷仲堪)같은 고관대작들과 자주 어울리면서 곧잘 우수개판을 벌였다. 

 어느 날 은중감의 집에서 세 사람이 모여 우스갯소리를 나누다가 무엇이 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상황인가에 대해서 한마디씩 하기로 했다.  맨 먼저 환현이 입을 열었다.  "창 끝으로 쌀을 일어 칼로 불을 때서 밥하기."  은중감이 뒤를 이었다.  "백살 먹은 노인이 마른 나뭇가지 기어오르기."  마지막에 고개지가 입을 열었다.  "우물의 용두레 위에 어린애 누워있기." 

 고개지가 입을 닫기가 무섭게 좌중에 날아든 소리가 있었다.  "장님이 애꾸눈 말을 타고 한밤중에 깊은 못가에 이르기"  세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돌려보니 소리의 주인공은 참군이라는 낮은 벼슬을 하고 있는 사나이였다. 그가 뱉은 한마디는 우스갯소리의 대가(大家) 세 사람의 '작품'을 압도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고관 대작들이 놀고 있는데 함부로 끼어 든 것은 무엄하기 짝이 없는 짓이었다. 게다가 은중감은 공교롭게도 그때 한쪽 눈을 다친 상태여서 분위기가 갑자기 어색하게 되었지만 그 외람된 사나이를 어쩔 수도 없었다


■ 면벽구년 面壁九年[마주할 면/벽 벽/아홉 구/해 년]

☞고승 달마가 산중에서 구년간 벽을 대하고 앉아 수도하여 마침내 형태가 돌 속으로 들어갔다. 정성을 다하면 금석이라도 뚫을 수 있다.자기 마음을 바로 보아 그 근본을 찾으려는 것(觀心)
[원]面壁九年始有此新悟
[유]山溜穿石(산류천석) : 산에서 흐르는 물이 바위를 뚫다./사석위호(射石爲虎)/마부위침(磨斧爲針)/우공이산(愚公移山)/수적천석(水滴穿石)/우공이산愚公移山/중석몰촉(中石沒촉)
 
[내용]육조단경()》《신승전()》 등 여러 불경에 보이는 달마() 대사의 행적에서 나온 말이다. 달마는 인도 브라만 계급 출신으로 포교를 위해 중국에 들어와 중국 선()의 개조가 된 사람이다. 처음 남중국에 들어와 양()의 무제를 만났을 때 무제가 물었다. “절대적인 진리의 궁극은 어떠한 것입니까?()” “텅 비어서 성스러움도 없습니다().” 그러자 무제는 다시 물었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알지 못합니다().” 대답한 달마는 무제가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북중국으로 갔다. 쓸데없는 의론과 형식을 따지는 무제에 실망했던 것이다.

위()로 간 달마는 뤄양 근교의 숭산()에 자리잡은 소림사()에서 면벽 9년에 들어갔다. 이른바 마음이 본래 청정함을 깨달아야 한다는 관심()을 행한 것이다. 그는 그 후 도육()과 혜가() 등 특출한 제자를 키웠는데, 면벽 관심에 관한 혜가와의 다음과 같은 내용은 중국 선종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를 잘 보여 준다. “불도를 얻고자 하면 어떤 법을 수행하는 것이 가장 요긴합니까?” ”오직 마음을 관()하는 한 법이 모든 행()을 다 거두어들이는 것이니 이 법이 가장 간결하고 요긴하다.” “어째서 마음을 관하는 한 법이 모든 행을 거두어들인다 하십니까?” “마음이란 만법의 근본이므로 모든 현상은 오직 마음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깨달으면 만 가지 행을 다 갖추는 것이다.”

면벽 9년이란 곧 자기 마음을 바로 보아 그 근본을 찾으려는 것이다. <두산백과>

[속담]우물을 파도 한 우물을 파라. /무쇠공이도 바늘 된다.

[참고] 인도 이름은 보디다르마요. 달마대사 또는 달마라 한다. 1500년전 남인도 왕세손 셋째왕자로 태어나 대승불교에 입문하고 중국으로 와서 선의 개조가 되고 정법을 전파하기 위해 중국 광동 , 광주를 거쳐 소림사에 이른다.

달마는 부처로부터 28대 조사이며 제2조가 되는 혜가를 만나 이입사행과 선의 정법을 전했다 한다. 6세기초 달마는 서역에서 화북으로 건너와 주로 낙양에서 활동했다.

숭산 소림사 천연토굴에서 9년간 옷한벌로 면벽수행을 하였다. 9년동안 잠도 자지 않고 정진하던 중에 자꾸 잠이 와서 속눈썹을 모두 뽑아서  버리고 눈꺼풀을 손톱으로 잘라서 버렸는데 그것이 차나무가 되었다는 일화가 전한다. 달마는 중국인들에게 부탁하는 것을 싫어하여 강을 건널 때 매화나누나 갈대를 꺾어 타고 건넜다고 한다


■ 면종복배 面從腹背 [얼굴 면/따를 종/배 복/등질 배]

☞표면으로는 복종하는 체 하면서 내심으로는 배반함.
[동]경이원지(敬而遠之)/勸上搖木권상요목: 나무 위에 오르라고 권하고는 오르자마자 아래서 흔들어 댐 /口蜜腹劍구밀복검 / 양봉음위陽奉陰違

[예문]
▷ 덕으로써 사람을 따르게 하지 않고 힘으로써 사람을 따르게 하면 자연히 면종복배하는 자가 생기게 마련이다.
▷ 전하께선 면종복배하는 자가 적지 않음을 통촉하셔야 됩니다.≪서기원, 조선 백자 마리아 상≫
▷ 교체 필요성이 제기되는 비서관들의 유형은 △정체성 부적격자 △능력 부족자 △사리사욕 추구자 등으로 나뉜다. 정체성 부적격자들은 김 대통령이나 수석비서관들의 개혁적인 정책방향에 실제로는 동조하지 않으면서 ‘면종복배’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인터넷한겨레>


■ 명경지수 明鏡止水 [밝을,맑을 명/거울 경/그칠 지/물 수]

☞맑은 거울과 고요한 물’이라는 뜻으로] 맑고 고요한 심경(心境)을 이르는 말. 맑은 거울은 그쳐 있는 물이다. 맑고 깨끗한 마음씨는 담겨 있는 물과 같다.

[동]雲心月性(운심월선) : 구름 같은 마음에 달 같은 성품이란 뜻으로 욕심없는 말과 깨끗한 마 음씨를 일컫는다. 平易淡白(평이담백) : 깨끗하며 욕심이 없는 마음.

[출전]『莊子』, 德充符篇
[내용] 형벌로 다리가 잘린 왕태(王?)는 문하생(門下生)이 孔子의 문하생에 필적할 만큼 많았는데 상계(商季)가 그것을 불만스럽게 여겨 공자에게 물었다.“왕태는 자기 몸을 닦고 자신의 지혜로 마음의 본체를 깨달은 것 뿐이어서 자기를 위한 수행이지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은 아닌데 어찌 그에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듭니까?”「공자왈 사람은 흐르는 물을 거울로 삼지 않고 고요한 물을 거울 삼는다.
[원문]孔子曰 人은 莫鑑於流水하고 而鑑於止水라

[예문]
▷ 과연 제대로 이 도를 밝힌다면 마음의 근원이 빈 거울이나 명경지수처럼 맑고 깨끗해져 옳지 않은 말이 마음을 미혹하지 못하여 발해 나오는 감정이 모두 중정해질 것입니다.≪번역 인조실록≫

▷지금 그대의 눈에는 청초호가 더럽게 비치겠지만 과거의 청초호 맑은 청춘의 샘이었으며, 미래의 청초호는 명경지수가 될 것임을 의심치 말아야 한다. 다시 노래를 불러주오. 청초호의 옛 모습이 오롯이 복원되는 그 모습을...<2006 데일리안>  


■ 명모호치 明眸皓齒 [밝을 명/눈동자 모/흴 호/이 치]

☞밝은 눈동자와 흰 이,아름다운 여인
[유] 경국지색 傾國之色 傾城之美(경성지미)/ 萬古絶色(만고절색)/ 絶世(代)美(佳)人(절세가인)/一顧傾城(일고경성) / 丹脣皓齒(단순호치)-붉은 입술 흰 이/明眸皓齒(명모호치)-맑은 눈동자와 흰 이/花容月態.(화용월태)-꽃같은 용모와 달빛같은 자태/雪膚花容(설부화용)-눈같이 흰 피부와 꽃같은 용모/羞花閉月(수화폐월)--꽃도 부끄러워하고 달도 숨을 만큼 아름다운 미인『장자』/ 國香(국향)/ 國色(국색)

[출전]두보의 詩 ≪애강두哀江頭≫
[내용]당나라 현종은 말년에 이르러 양귀비에게 넋을 빼앗겨 국정은 완전히 뒷전이었다.
이때 안록산은 755년에 20만 대군을 휘몰아 장안성으로 몰아쳐 이후 9년간 천하를 소동시켰다.두보(杜甫)는 안록산이 난을 일으킨 그 해에 44세였다.현종이 있는 곳으로 가다 반군에게 체포되어 장안으로 끌려갔다. 이때 그의 나이 45세였다.두보는 하급 관리였기 때문에 곧 풀려났다. 그는 도성이 반군에게 유린당하자 장안의 동쪽 곡강을 찾아갔다.
  이곳은 왕후(王后)나 장상(將相)의 귀부인들이 평소 유람을 즐기던 명승지였다.그러다 보니 현종과 양귀비도 이곳 강두(江頭)에서 자연을 희롱하며 즐기곤 했다.두보는 그것을 슬퍼하며 시를 읊었다.

<‥‥장안성 남쪽의 소릉에 사는 나는 난(亂)을 만나 황폐해진 도성의 지난날을 생각하니 슬픔으로 통곡이 복받치는 것을 삼키며 울었다. 도성을 구비구비 돌아 흐르는 곡강(曲江) 언저리를 방황하면서‥‥. 옛날 한나라 소양전 중의 가장 으뜸 가는 조비연에게 비견됐던 양귀비는 천자와 함께 수레를 타고 천자를 따라 함께 모시고 있었다.
그 수레를 호위하며 나아가는 재인(才人) 여관(女官)은 허리에 활을 매었고, 타고 가는 백마의 입에 황금 자갈을 물리었다. 그 재인이 몸을 돌려 하늘을 향하여 구름 사이로 활을 쏘면, 한 개의 화살에 쌍으로 날던 새가 맞아 떨어졌다. 그런데 지금, 고운 눈과 흰 이(明眸皓齒)의 양귀비는 어디 있는가‥‥>

[원문]少陵野老呑聲哭 春日潛行曲江曲 江頭宮殿鎖千門 細柳新蒲爲誰綠 憶昔霓旌下南苑 苑中萬物第一人 同輦隨君侍君側 輦前才人帶弓箭 白馬嚼齧黃金勒 身向天仰射雲 一笑正墜雙飛翼 明眸皓齒今何在 血 遊魂歸不得 淸渭中流劍閣深 去住彼此無消息 人生有情淚沾臆 江草江花豈終極 黃昏胡騎塵滿城


■ 명실상부 名實相符 [이름 명/속,내용 실/서로 상/맞을 부]

☞이름과 실상이 서로 들어 맞음. 알려진 것과 실제의 상황이나 능력에 차이가 없다.
[반] 名實相反(명실상반)

[예문]
▷ 브라질은 명실상부한 축구 강국이다.
▷ 영조는 왕위에 오르자 국왕이 명실상부하게 정치를 주도하는 체제를 구축하고자 했다.
▷ 국민 여러분의 뜻을 명심해서 명실상부하게 선처를 하도록 성심성의 노력하겠습니다.≪이호철, 소시민≫  
▷ 호남 제일성(湖南第一城)이라는 전주는 명실상부하게 전라 감영이 자리 잡은 남도 제일의 요지이다.≪유현종, 들불≫ 


■ 명약관화 明若觀火 [밝을 명/같을 약/볼 관/불 화]

☞불을 보는 것 같이 밝게 보인다. 더 말할 나위없이 명백하다.
[예문]
▷ 아직 보발을 받지 못했지만 정부가 또 원군을 내려 보낼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었고, 잘못하면 청국이나 왜국에 청병을 원할지도 모른다는 근심이었다.≪유현종, 들불≫
▷ 만일 그 통에 유 선달 집도 상인들에게 인심을 잃고 토호질을 하는 양반이었다면 화를 입었을 것이 명약관화였다.≪이기영, 봄≫  
▷ 하지만 양측이 이미 `대화' 대신 `힘'을 선택한 이상, 선암사 사태의 말로(末路)가 이젠 명약관화(明若觀火)해졌다. 양측이 더이상 업보를 쌓는 일을 멈추고 부처님의 지혜를 빌어 사태 해결에 나서야 할 시점이다.<2006 연합뉴스>


■ 명재경각 命在頃刻 [목숨 명/있을 재/잠깐 경/시각 각]

☞목숨이 끊어질 지경.≒ 명재조석 命在朝夕
[예문]
소인 방자놈 문안이요. 대감마마 행차 후에 기체 안녕허옵시며, 서방님도 먼먼길을 노독이나 없이 오시니까? 살려 주오, 살려 주오. 옥중 아씨를 살려 주오. 신관 사또 도임 후에 아씨를 잡아딀여 수청 아니 든다 허고, 성모삼치 중장의 명재경각이 되였으니, 살려 주오. 살려 주오, 옥중 아씨를 살려 주오.” 어사또 기가 막혀, “우지 마라. 우지 마라. 방자야 우지 말어라. 천붕우출이라,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궁기는 있는 법이니라. 우지를 말라면 우지 마라.” -판소리다섯마당≪춘향가≫  

▷ 춘향이는 이서방을 생각하여 옥중에 갇히어 명재경각(命在頃刻) 불쌍하다 몹쓸 양반 이서방은 한번 가고 소식 끊어지니 양반의 도리는 그러한가?≪춘향가≫

▷ 몇 해 전에는 JAL기의 한 승객이 후지산으로 추락하는 명재경각의 순간에도 기록을 남겨서 해외 토픽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오랜 뒤에 알았지만, 그 때 내 생각은 틀린 것이었다. 물을 건너는 사람들이 탕탕(蕩蕩)히 돌아 흐르는 물을 보면, 굼실거리고 으르렁거리는 물결에 몸이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아서 갑자기 현기가 일면서 물에 빠지기 쉽기 때문에, 그 얼굴을 젖힌 것은 하늘에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숫제 물을 피하여 보지 않기 위함이었다. 사실 어느 겨늘에 그 잠깐동안의 목숨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었으랴! 


■ 명철보신 明哲保身 [밝을 명/밝을 철/지킬 보/몸 신]

☞총명하고 사리에 밝아 일을 잘 처리하고 요령있는 처신으로 몸을 보전함
[출전]   『시경(詩經)』 대아편(大雅篇)
[내용]주(周)나라 11대 선왕(宣王)은 당시 재상으로 있던 중산보(仲山甫)의 도움으로 선정을 베풀수 있었다. 뒷날 그는 중산보가 자기 곁을 떠남에 그 서운함을 다음의 시가로 찬양했다.(선왕의 명을 받고 제나라로 성을 쌓으러 갈 때, 길보가 전송하면서 중산보의 덕을 찬양한 것이라고도 함)
 

     지엄한 어명을 받잡고 중산보는 잘도 해냈구나(肅肅王命 仲山甫將之)
     나라의 잘잘못을 그는 소상하게 밝혔으며(邦國若否 仲山保明之)
     밝고 어질게 처신하여 몸가짐에 그르침이 없었다(旣明且哲 以保其身)
     아침 저녁으로 게으르지 않고 오직 임금하나만 섬겼노라(夙夜匪解 以事一人)

명철보신은 기명(明) 차철(哲) 이보(保)기신(身)에서 나온 말로 임금이 중산보를 칭찬한 말이다. 여기에서 명이란 이치에 밝은 것이요, 철이란 사리에 분명함을 뜻한다. 또 보신이란 성급하게 시류에 휘말리지 않으며 매사에 법도를 지켜 온전하게 처신하는 태도를 말한다.
그러나 요즘 와서는 본래의 뜻과는 약간 변질되어 많은 지식인이 자기의 명철함을 이용, 대의명 분에 비중을 둔다기 보다는 개인적 입신영달을 쫓아 처신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의 희화적 대명사 로 곧잘 쓰이기도 한다.--이응수 <고사산책>에서

[참고]
▷ '명철'은 『書經』에서, 은나라 무정(부왕인 소을에 이어 은의 국왕으로 즉위하여 망부(亡父)의 3년 상을 치 르고도 정치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킨 채 조용히 신하들을 지켜보고만 있었다).의 성스러운 덕을 칭송하여 '천하의 사리에 통하고 뭇사람들보다 앞서 아는 자는 명철하다."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그리고 '보신'은 나오고 물러남에 있어 이치에 어긋남이 없는 것을 뜻하며 때로는 처세에 능한 사람을 가리킨다.

▷ 당나라 시인 유종원(柳宗元)이 殷의 기자(箕子)의 비(碑)에“기자의 묘비에 씀”이라는 글에서 기자의 덕망을 칭송하면서“그 명철을 보하라”라고 하였다. 기자는 은나라 주왕(紂王)의 그릇된 정치를 간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거짓 미친 체하여 몸을 보전하고 그의 도를 후세에 남긴 현인이다. 또한 당나라 시인 백낙천(白樂天)은‘두우(杜佑) 치사(致仕)의 제(制)’라는 글에서“힘을 다하여 임금을 받들고 명철보신하며 진퇴종시(終始), 그 길을 잃지 않았다. 현달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누가 능히 이것을 겸하리오.”라고 두우를 칭송하였다.

출처 : 이종운영어학교실
글쓴이 : 이종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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